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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인도-중국 간 국경 분쟁의 원인과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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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라다크 동쪽에 위치한 갈완 계곡에서 인도군과 중국군 간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수십명이 죽고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양국 관계는 그 어느때 보다도 냉각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게 된 주요 원인과 현재의 분쟁 상황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1. 국경 분쟁 현황

 

현재 인도와 중국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총 4,057km에 이르는 장대한 길이의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이 '실질통제선(LAC)'이라는 이름의 임시 국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지도에서도 해당 부분은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지난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양국 간의 첨예한 국경 분쟁 문제 때문입니다. 구체적오 인도와 중국은 티베트 남쪽인 '아루나찰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 지역과 카슈미르 동쪽인 '악사이친(Aksai Chin)' 지역을 각각 실효 지배하며, 상대방이 점령 중인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India_disputed_areas_map (2).jpg

 

 

2. 최초의 발생 원인

 

본래 인도와 중국의 접경 지역은 척박한 고산 지대로 명확한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양국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이전부터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던 영국은 티베트 및 히말라야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중국과의 국경선을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형태로 확정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14년 쉼라에서 체결된 '맥마흔 협정(McMahon Agreement)'입니다. 해당 협정은 인도와 중국 간의 불분명한 국경을 확정하고자 영국 외교관이었던 맥마흔의 주도로 당시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 정부와 청나라 멸망 후 독립국 상태였던 티베트 조정 간에 체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서쪽인 부탄에서부터 동쪽인 브라마푸트라강까지 890km 구간의 '맥마흔 라인(McMahon Line)'이 확정되어고, 이에 따라 티베트 남부에 해당하는 현재의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은 인도의 영토에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Mcmahon LIne.jpg

(붉은 색이 맥마흔 라인에 따른 아루나찰 프라데시)

 

하지만 중국측은 이러한 내용에 불만을 품고 해당 협정에 조인하기를 거부지만, 당시는 신해혁명 이후의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후에 들어선 국민당 정권과 공산당 정권 역시 국공내전과 2차대전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3. 갈등 심화

 

하지만 1949년 중국공산당 주도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이러한 국경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산당 정부는 해당 맥마흔 협정이 영국 제국주의에 의한 불평등조약이며, 자신들은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인도 영토로 인정된 아루나찰 프라데시에 대해서는 남티베트를 의미하는 '짱난'이라고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인도 정부는 기존의 맥마흔 협정을 근거로 해당 지역이 자신들의 영토의 일부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 공산당 정권이 티베트를 복속시킨 후 가혹한 통치를 지속함에 따라 1959년에 대대적인 민중 봉기가 발생했는데, 이를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에 이릅니다. 이 때부터 양국 관계는 네루의 '비동맹주의'와 저운라이의 '평화 5원칙'에 바탕한 우호 관계를 뒤로하고 극도로 냉각되게 됩니다.

 

또한 당시 인도가 히말라야 소국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티베트 접경지에 병력을 대거 배치함에 따라 양국 간의 소규모 군사 충돌도 빈번히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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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인도가 아루나찰 프라데시를 위시로 한 맥마흔 라인 이남 지역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카슈미르의 일부인 '악사이친(Aksai Chin)'을 중심으로 신장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신장공로'를 비밀리에 건설하여 1957년에 완공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를 뒤늦게 파악한 인도 정부가 크게 항의함에 따라 양측 간의 분쟁은 한층 더 고조되게 됩니다.

 

본래 악사이친은 카슈미르 동부 고산 산악 지대로 현대에 들어서야 신장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그 가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지만, 과거에는 인도와 중국 양국 모두 당연히 자신들의 땅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정주 인구가 거의 없는 불모지에 불과했습니다.

 

인도는 해당 지역이 카슈미르의 일부이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아루나찰 프라데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897년에 영국측에 의해 설정된 '존슨 라인(Johson Line)'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존슨 라인 자체를 부정하면서 악사이친 지역은 당연히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했습니다.

 

Aksai_Chin_Sino-Indian_border_map.jpg

 

 

4. 중인전쟁의 발발 

 

이렇게 양측 간의 긴장과 충돌 상황이 심화되면서, 결국 1962년 10월 6일 중국이 인도를 상대로 대대적인 선제공격을 감행함에 따라 양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은 8~9만명의 정예병력을 동원하여 인도와의 동부 국경 및 서부 국경으로 동시에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의 공격을 예측하지 못했던 인도는 1~1.2만명의 수비병력으로만 이에 대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국공내전과과 한국전쟁 등 실전으로 단련된 인민해방군에게 이내 역부족을 드러내며 참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결국 해당 전쟁은 발발 한달만에 충분한 전략적 승리를 확보한 중국측이 미구그이 개입에 따른 확전을 우려하여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함으로써 인도의 굴욕적인 패배로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때부터 중국은 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악사이친 지역을 확보했고, 현재까지도 실효 지배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피해 규모는 인도측이 전사자 1,383명, 부상자 1,047명, 실종자 1,696명, 포로 3,968명이었고, 중국측은 전사자 722명, 부상자 1,697명에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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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 후 경과

 

이처럼 인도와 중국은 중인전쟁 이후 각각 아루나찰 프라데시와 악사이친 지역을 실효지배하면서, 서로 상대방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크고 작은 충돌을 빚어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967년 시킴 지역에서 발생한 교전으로 양측 모두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고, 1975년에는 아루나찰 프라데시에서 중국군의 매복 공격으로 인도군 병사 4명이 순직하기도 했습니다. 1975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올해 벌어진 난투극 이전의 마지막 유혈 충돌로 기록되었습니다.

 

양국인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고자 몇차례 회담을 가졌지만 끝내 결론을 보지 못했고, 결국 1993년과 1996년에 이르러서야 서로의 실효지배를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형태의 소위 '실질통제선 평화 및 안정 협정'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 때 처음으로 실질통제선이라는 개념이 공식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측은 해당 지역에서 화기와 폭발물 사용을 금지하는 데도 합의했습니다. 일종의 비무장지대의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충돌에서 돌, 쇠몽둥이 등이 사용된 것도 해당 협정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도와 중국 양측은 현재까지도 국경선을 확정하지 못한 채로 실질통제선을 임시 국경으로 삼고 대치 상태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india china border 2.jpg

 

 

5. 최근의 충돌 상황

 

지난 2017년 6~8월에는 부탄과 중국 간의 국경 분쟁 지역인 '도카라(Dokara)'에서 인도와 중국군 양측 군대가 70일 동안 대치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사태의 원인은 도카라 지역에 중국군이 일방적으로 도로를 건설한 데 대해, 부탄이 항의하는 동시에,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여 인도에 대해 개입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인도는 히말라야 지역에서의 중국군의 팽창을 우려하며 부탄을 대리해 중국군에게 대응했는데, 이로 인해 해당 문제는 인도와 중국 간의 국경분쟁 문제로 격화되었습니다.

 

이후 양국군은 70일 간 대치하며 긴장 상태를 이어갔지만, 양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따라, 인도군이 먼저 철수하고 중국군이 도로 건설을 중단하는 선에서 해당 사태는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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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20년 6월 15일 악사이친과 라다크의 경계를 이루는 '갈완 계곡(Galwan Valley)'에서 양국군 병사 600여명이 몽둥이와 돌을 사용하며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인도군 병사 20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1975년 이후 최초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게 됩니다. 중국군도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고, 다만, 비공식적으로 43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5월부터 지속된 양국 병사들 간의 대치 상황이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도는 중국측이 실질통제선을 넘어와 군사시설을 구축하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은 인도측이 무단으로 실질통제선을 넘어와 도발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언론을 통해 중국군이 쇠못이 밖힌 몽둥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인도 내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반중시위가 개최되는 등, 반중 정서가 극도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산 보이콧 운동이 일반 소비자들과 상인단체를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정부도 철도와 통신 등 기간 산업에서 중국 기업의 참여 배제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은 인도와 외교적 채널을 통한 협상을 지속하면서도, 해당 접경 지역에 격투기 선수로 구성된 민병대를 편성하고 병력을 증강배치하는 등, 맞불을 놓고 있어 사태가 조기에 진화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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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본문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전해주세요.^^
티아고 2020.06.26. 17:20
잘 읽었습니다. 도카라는 부탄과 영토분쟁인 곳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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